3년 전, 우리는 일상의 작은 균열이 얼마나 큰 충격이 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마스크 하나를 구하지 못해 줄을 서고, 새 차를 계약하면 1년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
그 혼란 속에서 전 세계 기업들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싼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손에 들어오지 않는 효율은 효율이 아니다.”
팬데믹과 지정학 갈등이 겹친 지난 몇 년은 기업들에게 단순한 비용 절감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기업들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던 제조 기반을 다시 본국 혹은 동맹국으로 되돌리는 거대한 흐름, 바로 리쇼어링(Reshoring)의 시대에 서 있다.
1. ‘가성비의 시대’는 끝났다 – 효율성은 더 이상 충분한 답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기업들의 우상은 ‘비용 대비 효율’이었다.
중국·베트남·멕시코 등으로 공장을 옮기고, 재고는 최소화하며, 생산은 적시에 흘려보냈다.
이른바 Just-in-Time(적시 생산) 모델.
그러나 2020년 이후 우리는 정반대의 현실을 보았다.
- 반도체 한 개 부족해 자동차 라인이 중단되고
- 항만이 봉쇄되며 수만 개의 컨테이너가 공중에 떠 있고
- 항공·해상 운임은 몇 배로 치솟고
- 정작 필요한 부품 하나가 없어 거대한 공장이 멈추는…
기업들은 이때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비용이 아니라 공급망이 기업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제조 원칙이 등장했다.
“비용(Cost)보다 신뢰(Trust), 효율(Efficiency)보다 안정(Resilience).”
싸게 생산하는 것보다 끊기지 않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Just-in-Time이 아니라 Just-in-Case,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대비해 두자”라는 전략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2. 세계화의 종말? 아니다, ‘끼리끼리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기업을 리쇼어링으로 몰아가는 진짜 압력은 팬데믹이 아니다. 지정학의 시대(Geopolitical Age)가 시작된 것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경제는 ‘효율’에서 ‘동맹’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말한다.
“우리 편에서 만든 것만 들어올 수 있다.” –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CHIPS법
기업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생산해왔는데, 갑자기 “그건 보조금 대상이 아님”이라고 선언하는 세계가 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개념이 있다.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 “차라리 믿을 수 있는 나라로 옮기자.”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현대차가 조지아에, TSMC가 애리조나에 초대형 공장을 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건 단순한 투자나 확장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생존을 위한 이사”다.
3. 돌아오는 길이 꽃길은 아니다 – 비용과 인력이라는 현실
하지만 모든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정답은 명확하다. 아니다.
리쇼어링이 가진 구조적 한계는 분명하다.
1) 높은 인건비
미국·유럽의 제조 인건비는 아시아 대비 훨씬 높다.
2) 인력 부족
숙련된 제조 기술자를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의료기기 분야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3) 땅값·규제·환경 기준
본국 생산은 공장 건설 비용부터 규제 비용까지 부담이 크다.
그래서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외치면서 동시에 AI·로봇 자동화·스마트팩토리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다.
비싼 나라에서 공장을 돌리려면, 결국 사람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리쇼어링 공장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로봇·AI·디지털 트윈이 돌아가는 초효율 자동화 공장이 된다.
4.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지도 – 경제권이 다시 그려진다
리쇼어링은 단순히 ‘돌아오기’가 아니다. 세계 경제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과정이다.
🔹 미국 중심 공급망
- 반도체 (TSMC, Intel)
- 전기차·배터리 (LG, SK, Panasonic)
-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 유럽 중심 공급망
- 그린에너지
- 배터리 밸류체인
- 의료기기
🔹 인도·멕시코·베트남
세계화 2.0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
특히 인도는 스마트폰·전자·반도체 패키징에서 폭발적 성장 중이다.
5. 리쇼어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 기술이 비용을 이긴다
기업들이 다시 본국 생산을 고민할 수 있는 이유는 기술 때문이다.
AI 기반 수요·공정 예측
재고·불량·리드타임 절감 → 생산 효율 폭발적 증가.
로봇 자동화
24시간 공장이 가능해지며 인건비 부담 대폭 감소.
스마트팩토리·디지털 트윈
불량률 감소 + 공정 최적화.
재생에너지 기반 생산
에너지 가격 안정화 → 글로벌 생산비 역전.
과거에는 “공장은 노동이 싼 곳에 지어라”가 정답이었다.
지금은 “기술이 비용을 압도한다”가 새로운 정답이 되고 있다.
Blifenote의 시선
리쇼어링은 경제적 유행도 아니고, 기업의 애국심도 아니다.
이것은 30년간 굳어졌던 세계화의 영토가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기업들은 이제 이렇게 묻는다.
“어디에서 가장 싸게 만들까?”가 아니라 “어디에서 끊기지 않고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은 효율이 강한 기업이 아니라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기업이 승자가 된다.
리쇼어링은 그 생존의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이다.
그리고 그 선 위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의 지형이 그려지고 있다.
